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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한국인의 색채와 감성, 한국색채, 오방정색

by 서풍광시곡 2020. 5. 19.

 색은 사람의 심리상태를 반영한다거나 심리변화를 일으킨다고들 한다. 예를 들어 초록색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고, 붉은 색을 보면 흥분되는 등......그리고 이런 색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도 차이가 많이 난다. 개개인에 따라 선호하는 색이 다르듯이 민족마다 선호하는 색도 당연히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까도 말했듯이 색은 그 사람의 심리 상태나 성격 등을 반영하므로 민족의 민족성도 반영될 것이라 생각된다.


 한국인 하면 빠질 수 없는 색 중에 먼저 흰색이 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을 백의 민족이라 하지 않았던가?! 
 우리 조상들은 백색을 말할 때 아주 희다는 뜻으로 순백 또는 수백, 백정, 정백 그리고 때로는 선명하게 희다고 해서 선백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들은 혼색이 전혀 없는 상태의 마냥 흰 색을 뜻하며 흰색에 가깝지만 미묘한 혼색이 있는 색들은 구분해서 불렀는데, 예를 들면 젖빛 같은 유백, 달걀 빛 같은 난백, 잿빛을 곁들인 회백, 누르스름한 황백, 푸르스름한 청백 등 이 있다.
 한편, 실이나 옷감의 표백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백색을 소색이라고 했는데  소자는 흰 소 또는 순백󰡐소󰡑라 하여 빛깔이 흰옷을 󰡐소의󰡑라 했으며 겨울의 흰 눈을 󰡐소설󰡑, 흰 얼굴을 󰡐소안󰡑, 가을은 음양 오행의 백색이므로 󰡐소추󰡑라 했다.
 어원자전을 보면 소자는 수자 윗부분의 변형으로󰡐누에󰡑에서 빼내는 생사가  한 줄씩 내려옴을 나타내는 회의문자이며 「본래의 그대로」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백지의 뜻이 파생되며, 이런 의미에서 쓰인 한자 단어로는 본디의 바탕을 의미하는 소지라는 말이 있다.
 이같이 한국인에게 있어서󰡐백색󰡑이라는 말은 단순히 '흰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순백과 유백, 난백, 회백 등의 모든 백색 계열의 색을 아우르는 말이다. 또한 여기에는 인공적으로 색을 조작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색이라는 의미가 다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것은 우리민족이 흰색의 옷을 많이 입었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양반이나 귀족들은 값비싼 비단 같은 고급 재료로 옷을 만들어 입었겠으나 가난한 서민들은 값싼 무명이나 삼베, 모시, 면 등을 재료로 했을 것이다. 이것 때문에 우연히 백의 민족(?)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유교적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유교에서는 청명하고 곧고 지조와 정조 등 혼탁한 것을 싫어했다. 때문에 유학자들은 백자를 좋아하고 흰 화선지에 글이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이것이 우리가 백의민족이 된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또 우리민족은 원색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붉은 색이 으뜸이라고 생각하는데 여자들의 한복이나 무당의 옷 등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붉은 색은 정열적이고 약간 야하면서 도발적인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귀신이 싫어하는 색으로도 이해된다. 동짓날 귀신을 떨쳐 보내기 위해 붉은 팥죽을 먹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붉은 색을 현재 우리민족은 예전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중국이 예로부터 붉은 색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우리도 거기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2002월드컵 때, 전 국민이 하나되어 붉은 색으로 치장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때당시 옷이든 자동차든 붉은 색 물건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고 하니 정말 붉은 색의 강렬한 이미지처럼 붉은 색에 열광했던가?! 정열적이고 강한 이미지 때문에 대표팀의 유니폼도 붉은 색이었다. 아마도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한국”하면 떠오르는 색이 뭐냐고 묻는다면 가차없이 붉은 색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원색 중에 노란색도 좋아한다. 붉은 색과 함께 여성의 한복과 무당의 옷은 물론, 색동 한복에도 많이 사용되었다. 노란색은 따듯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마치 봄의 색깔인 것 같다. 봄에 피는 개나리의 노란색은 이상하게도 그 이미지가 병아리가 생각난다. 그래서 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유치원 유니폼에 유독 노란색이 많은 것도 병아리처럼 작고 귀엽고 아늑한 이미지 때문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검은색도 우리민족과 연관이 깊은 것 같다. 특히 장례식 때 흰색과 더불어 검은색을 많이 볼 수 있다. 검은색은 그 끝없이 어두운 색 때문에 죽음과 연관되어 여겨졌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저승사자가 항상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쓰고 나오는 것도 연관이 있는 듯 하다. 이처럼 예전에는 검은색이 별로 좋은 뜻으로 쓰이진 못 했던 것 같으나, 지금은 많이 변한 것 같다. 일반적으로 검은색의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으며, 권위와 무게 감의 표현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검은 양복에 검은 자동차, 검은 뿔테 안경 등등...... 그리고 고급스러움을 나타내기도 하며 요즘엔 섹시한 색으로도 여겨지는 것 같다. 여성의 속옷이나 드레스 등에 검은색이 많이 쓰이는 것도 이것 때문인 것 같다. 
  한국인들은 음식의 색에 의미를 부여하고 돌이나 동지 같은 특정한 날에는 그런 색을 지닌 음식을 마련해서 잡귀를 물리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였으며,  그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팥죽이 있다. 
 옛 조상들은 귀신은 음에서 태어나 음에서 살기 때문에 양과는 상극이고, 그렇기 때문에 양의 기운으로 귀신을 물리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강한 양은 불이고, 불은 붉은 색이기 때문에 붉은 색으로 귀신을 쫓을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아기를 낳거나 제를 지낼 때 붉은 고추를 끼워 금줄을 치는 것도, 집 둘레에 맨드라미나 봉선화를 열심히 심었던 것도 모두 양의 색으로 잡귀를 물리치려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동지가 되면 팥죽을 쑤어 먹기도 하고 대문과 담벼락, 마구간을 비롯한 집안 곳곳에 뿌리기도 했다. 이로써 작은 설이라고 불리는 동지에 인체와 집안에 숨어있는 잡귀를 내쫓고 새해를 맞이하려고 했던 것이다.
 팥죽과 함께 팥으로 고물을 만들어 올린 시루떡도 벽사의 의미에서 즐겨 먹었는데, 이러한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고사를 지낼 때나 이사를 할 때는 팥고물을 올린 시루떡이 빠지지 않는다.  한편 잔치나 제사 때는 붉은 팥 대신 흰 팥이나 콩, 녹두, 깨 등으로 고물을 올렸는데 이것으로 행사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떡에 사용하는 고물의 색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동일한 의미에서 돌잔치 상에는 붉은 색의 수수 경단이 올려졌다. 또 여기에는 백설기가 같이 올려졌는데 이것은 아이의 정신이 백설같이 깨끗하고 순수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올려진 것이다. 
 혼례에서는 청색과 홍색이 주로 사용되는데, 폐백음식을 싸는 보자기, 음식에 곁들여진 실, 혼례식 때 대례상에 올려지는 양초, 닭을 싼 보자기 등이 모두 청색과 홍색이었다. 이 때 청색과 홍색은 음과 양의 상징인 동시에 남과 여의 상징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상의 네 가지 색이 한국인과 가장 친숙하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이 생각도 바뀌고 민족성도 조금씩 변해갈 것이며 현재의 우리나라의 색도 바뀔 것이다. 100년이 지난 후에는 우리나라의 색은 어떨지 궁금하다.

 흔히 한국을 소개할 때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라는 말을 앞세우는 데, 사실 따지고 보면 지구상의 나라들 중 한국처럼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한 나라도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비슷한 경도에 위치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더라도 이렇게 작은 반도 내에서 동서 혹은 남북의 기후 차가 현저한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기후의 영향으로 각 계절의 풍부한 색감을 경험하게 되고 많은 식물들과 자연현상을 경험하면서 살아온 민족이기에, 그것이 한국인이 사용한 색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한, 중, 일의 전통적 복색의 차이에 대한 논문에서도 이러한 환경적 요인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는 데, 중국은 풍토의 변화가 심하고 대기 중에 먼지가 많아 강렬한 원색 계열의 채도가 높은 빨강이나 흑색 그리고 청색을 선호하고 일본은 습기가 많아 간색 계열의 색상이 매우 발달했으며 한국은 온대 기후에 안정된 산야로 구성되어 순한 색을 선호하고 저채도 고명도의 경향을 가진다고 하는 견해를 볼 수 있다.
 한편 자연 환경적 요인은 이러한 영향 외에도 옷감을 물들이는 데 쓰여졌던 전통염료들이 대부분 식물에서 추출한 염료였다는 측면에서도 많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옷감 한 필을 물들이는데 필요한 물감의 값이 베 한 필과 맞먹었고, 특히 붉은 색을 염색하는데 쓰인 단목(丹木)은 전적으로 수입품에 의존해야만 되었기에 󰡐일점홍(一點紅)이 만점루(萬點淚)󰡑로 표현될 만큼 붉은 색 염료가 귀했다는 중종(中宗) 때의 기록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염료의 원료가 되는 식물의 희귀성과 복색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근대 이전에는 염료가 희귀하고 고가였기 때문에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식물이 아니면 대중적으로 이용될 수 없었으며, 감물 염색과 같이 염료의 재료가 되는 식물이 풍부할수록 서민층에도 널리 애용되었다. 
 광물질이 원료가 되는 단청 채색재료의 경우에도 대부분이 중국을 통해 수입되는 재료에 의존했으며 금값에 맞먹는 고가의 재료였다. 이 때문에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하더라도 경제적인 부담으로 인해 서민들은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고, 색상을 폭넓은 계층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된 한 가지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자연환경적 요인 외에는 사상적 측면의 요인들이 있다. 
 한국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한 가지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며 이러한 경향이 문화전반에 걸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색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연과 우주의 원리에 순응하려는 노력이 음양오행이라는 철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 음양오행설에서 비롯된 󰡐오방정색󰡑과  󰡐오방간색󰡑그리고 󰡐잡색󰡑으로 분류되는 색체계가 한국 전통 색의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사대주의(事大主義)와 유교사상, 도참설 같은 여러 가지 사상적 요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한국인의 색채의식에 영향을 끼쳐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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