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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포스트 모던 패션 - 포스트모던 룩, 팝아트 룩, 펑크 룩

by 서풍광시곡 2020. 5. 11.

포스트 모던 패션


1. 포스트모던 룩
1)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적 배경

  미술사적 용어로서의 모던 또는 모더니즘은 18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시대를 말하며, 이 기간 동안 탄생한 미술양식을 의미한다. 포스트 모던은 포스트 모더니즘과 동의어로서, 반이성과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는 대중 사회의 출현을 계기로 탄생하였으며, 현대를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형식이나 이론을 추구하는 현대적 모드를 만들어 내려는 움직임의 총칭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다양한 전위적 운동의 전개와 실험적 시도를 추구하고, 새로운 장르의 개척을 시도함으로써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거부하거나 혼합하여 붕괴시키는 현상을 가져왔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에는 펑크 경향과 앤드로지너스 등의 전위적인 아방가드르드 경향이 포함된다. 포스트 모더니즘 복식은 현대적인 감각과 클레시컬한 감각의 융합으로써 클래씨시즘과 모더니즘, 아방가르드와 노스탈자의 융합으로 보는 경향도 있으며, 동양과 서양, 클래식과 전위, 호화 찬란한 드레스 대신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는 패션이 등장했고, 고객은 상류사회에서 젊은 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980년대 반이성과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는 시대 상황에 따라 부각되기 시작하여 전통을 거부 하거나 혼합하는 현상을 가져왔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성은 기존 질서를 무시하는 반패션과 전위적인 패션으로 표현되며, 대표적인 디자이너로는 캐롤린 에반스, 미나 소턴을  들 수 있으며, 특히 1980년대 유행하였다. 고정된 종래의 디자인 개념을 깨뜨리고 현대의 개성화, 다양화, 고급화의 추세를 따라 특별히 유행한 스타일이 없이 여러 가지 스타일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나타나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모던 다음의’뜻으로 다원주의, 복합주의, 절충주의를 표방하여 주류와비주류간의 경계를 해체함으로써 순수예술과 상업예술 간의 인위적 형식 구분이 배제된 양상으로 나타났다. 패션에 있어서 기능성을 초월하고, 과거시대의 모드를 현대에 도입시켜 새로운 의복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2) 포스트모던 룩의 특징

 포스트모던의 특징은 장르 의식이 붕괴 혼합되는 양상을 보이며, 순수예술과 상업예술 간의 인위적 형식 구분도 배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1980년대에는 다른 시대와 문화로부터 그 양식과 이미지를 차용하였고, 이를 서로 혼합하는 방식이 두드러졌다. 특히 모더니즘적 문화와 사고방식의 틀을 거부하려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자연물을 주제로 상징적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많고, 제3국의 문화양식을 현대적으로 제시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의상에서는 1982년부터 등장하였으며, 단지 입기 쉽거나 손질하기 편하다는 과학기술에 지배받는 기능성을 초월하고, 치장한다는 일이 생활 속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던 과거의 모드를 현대에 가져와 의복에 새로운 매력을 창조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기존의 질서를 무시하는 반 패션과 전위적인 패션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의상의 특징은 고전주의, 절충주의, 복고주의, 감성 관능주의, 혼성주의 오리엔탈 민족주의, 원시주의, 아방가르드 및 초현실주의 등을 들 수 있다.
 포스트 모던 복식은 모던 복식에서 출발하여 1960년대의 팝문화, 히피, 영패션, 그리고 1970년대 핑크패션의 영향을 받아 1980년대 패션에서 개화 되었으며 포스트 모던 복식을 표현 특성에 따라 역사성 및 절충성, 다양성 및 전위성으로 나누어 고찰하겠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역사성 및 절충성은 단순하게 과거를 모방하기 보다는 과거의 요소들을 이용하여 더욱 새롭게 응용, 절충, 복합시키는 표현특성을 말한다. 이것을 역사적 절충주의로, 복식에서는 복고풍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 왕족의 남자가 착용하였던 칼라 스커트를 연상하게 하는 베르사체가 발표한 스커트는 아코디언 주름을 오른쪽으로 끌어 올려 사선을 이루게 착용하며, 그리스의 도릭 키톤을 연상시키는 엔젤 에스트라다의 이브닝 가운은 기하학적인 황금 분활의 미와 부드러운 주름으로 나타낸 율동미, 적당한 양의 신체 노출을 들 수 있다. 또한 카푸치가 디자인한 로마복식의 장방형의 천을 그대로 인체에 두르거나 감싸 자연스럽게 늘어뜨리는 형의 실크 저지 토가 드레스가 있으며, 중세 복식의 비잔틴 복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석 장식 십자가 형태와 크리스챤 라크로와의 작품인 주름진 실크 저지 스커트와 조젯 상의위에 착용한 비드 장식의 비잔틴 풍 웨이스 트 코트, 인체미의 강조 및 과정으로 표현 되어지는 르네상스 풍의 데꼴레뜨한 가슴과 가느다란 허리, 꼭 맞는 상의와 아래로 뻗치는 스커트로 이루어진 아우어 글래스 실루엣, 로코코 섬세한 여성적 곡선과 과도한 장식적 요소들 리본, 레이스, 프릴등이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절충성은 서로 상반된 복식 개념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동양과 서양 양식의 절충 등으로 표현되었다. 1970년대 초반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일본 디자이너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동양풍의 의상이 많이 발표되었다. 장폴코티에의 작품에서는 금색띠를 두른 중국풍의 팬츠 중국의 전통적 요소에서 빌려온 아이디어를 사용한 여러 디자인들 사치스러운 이브닝 직물이나 황실 색깔 등을 들 수 있다.
전위성으로는 제 1차 세계 대전 후 인간 생명의 존엄성 상실에 대해 절망을 느껴 나타나게 된 다다이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예술분야에서 획일적인 전통사회에 대한 비판, 전통 예술 기법의 의도적 파괴, 기존의 조화 방법에 도전하는 이색적 혼합등과 같은 전위적 표현으로 전개 되었으며 복식에서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상의나 하의의 코디네이션, 다른 이미지의 패턴과 색상의 혼합, 여성복의 남성화, 속의 변형, 노출의 극대화 등으로 표현하였다.
 현대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실루엣을 창조 하였는데 기발하고 독창적인 형태로 탄생된 의복들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발상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매력으로 어필되었고, 현대 디자이너들은 이를 통해 그들이 갖고 있는 창조적 의지와 강한 개성을 표출하였다.
속옷을 겉옷화 시킨 현상은 1980년대와 1990년대 패션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73년 상탈 토마스가 캐미솔 룩을 발표한 이래, 여성용 속옷인 브래지어, 슬립, 코르셋, 패티코트, 카티벨드 등을 겉옷으로 변형시키는 현상이 계속되었다. 주로 신체에 밀착되는 파운데이션 형태로 가슴과 허리선을 강조하여 섹시한 실루엣을 형성하였다. 표현 방법은 기존 복식에서 신체의 곡선을 드러내거나 또는 신체를 노출시켜 여성미를 강조하던 것과 동일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표현 수단이 속옷 이라는 데서 전혀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복식은 인체의 특정 부위를 인위적으로 강조 또는 노출시킴으로써 성적표현물로서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성 회복으로서의 성적 매력을 추구하는 경향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보다 대담한 육체의 노출이 시도되었다. 개방성을 지향하며 미의식이 변화되고 성 표현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노출의 표현이 극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노출 현상이 일반화된 계기를 마련한 것은 60년대 이후 안티 패션의 경향으로 등장한 미니 스커트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표현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초미니 드레스는 육체의 노출을 통해 에로티시즘을 강조하였고, 그의 상식을 벗어난 극도로 짧은 길이는 기존 질서와 사회적 권위에 대한 도전과 반항을 표명하는 것이었다.
또한 신체를 노출시키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시 스루 룩이 있다. 이것은 여체의 에로틱한 곡선을 투명 또는 반투명한 얇은 천으로 비추어 은은한 미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집트, 바로크, 엠파이어 시대에서도 그 실례가 있었고, 그 이후에도 자주 표현된 방법이었다. 포스트 모던에서의 see-through는 속이 훤히 비춰 보이는 얇은 옷을 여러 겹 입는 방식으로 색상, 재질, 소재 등을 자유롭게 조화시켜 재료와 구성법으로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며 섹시한 여성미를 강조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과거처럼 남성을 의식한 의상이나 속박에서 벗어나 스스로 즐기고 몸매를 드러내는 의복을 원하게 된 것이다. 화려한 직물로 여성적임을 더욱 강조한 형태나 의시적이고, 생태적인, 동물 프린트의 섹시함은 자연에 대한 관심과 여성의 매력이 조화를 이룬 것이다. 또한 시선을 집중시키는 목과 가슴의 화려한 장식은 대담한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의 악세서리를 사용해 여성미를 더욱 강조한 것이나 초현실주의, 팝 아트 등의 에로틱한 요소를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섹시 전위적인 스타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왕성한 욕구를 표출하고 있는 것들은 포스트 모더니즘 복식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작물의 한정된 소재 개념에서 벗어나 비닐, 금속, 인공 피혁, 합성수지, 고무등 여러 가지 소재를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것은 현대의 기술발전에 의해 새로운 소재가 연구, 개발되고 여기에 패션 디자이너들의 창조적 욕구가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 팝아트 룩
1) 팝 아트의 시대적 배경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발달한 과학기술은 천연색 사진, 인쇄술, 영화산업, LP레코드, TV와 같은 대중매체를 발달시켰고, 이러한 대중매체의 발달은 대중문화를 소재로 한 팝아트를 등장시켰다. 팝아트란 대중예술을 의미하며, 대중 소비문화를 보다 긍정적으로 보아 이를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것은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기계적인 기법을 이용하여 단편화하거나 반복 화하여 그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196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 발달하였던 팝 아트는 대중문화에 의해서 창출된 대중예술을 지칭하고 있다. 팝아트는 예술의 전통적 이념에 속하지 않는 양식이다. 즉 지극히 일상적이며 통속적인 것을 주제로 단순한 구성에 따라 사실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개방되고 수용된 태도로써 이미지를 대중화하는 시각전달을 꾀하였다. 
 만화와 TV, 포스터 등의 대중문화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면서 물질문명 속에서의 인간의 가치를 찾으려 하였고, 특히 유머와 위트등 낙천적 기질이 강하다. 팝아트는 미국보다 영국에서 먼저 시작되었으며, 1954년 대중문화에 의해서 창출된 대중미술의 적합한 명칭의 하나로서 영구의 비평가 로렌스 엘로웨이에 의해 처음 쓰여졌다. 다른 모든 예술 운동과 마찬가지로 팝 아트의 출현에는 1920년대에 담배갑을 주제로 사용한 미국의 스튜어트 데이비스의 희화와 콜라주, 1956년 리처드 해밀턴의 콜라주 작품이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상품과 도시의 쓰레기에 관심을 보인 마르쉘 뒤샹을 주축으로 한 다다의 영향이 지대하다. 
 팝 아트란 명칭은 예술성 자체의 의미라기 보다는 광고, 산업디자인, 사진술, 영화 등과 같은 대중 예술 매개체의 유행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언급한 명칭이다. 특히 도시 문화의 단면으로 통속적인 문화나 상업적인 문화를 가리키는 통칭으로 이용 되어 이와 같은 주제를 가지고 현대 사회를 평하는 화가나 조각가들의 작품까지도 포함하여 확대 사용하게 된 것이다.

2) 팝아트 룩의 특징

  인기 영화배우나 팝송 가수의 얼굴, 미키마우스와 같은 인기 만화그림, 또는 문자나 낙서기법 등이 T셔츠나 의상의 장식으로 선보이고, 유명 상표 유명인의 얼굴 지폐나 신문 등을 화면에 구성하여 대중에게 전달하고 대중의 소유하는 예술의 대중화를 야기 시켰다. 결국 팝아트는 일상적 재료와 테마를 사용하여, 그것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 시킨 것이다. 일상적이고 범속한 이미지의 소재들을 다루는 팝 아트는 현대 문명 속에서 대량 생산되어 범람하는 이미지와 도시 문명의 한 특징을 나타낸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급격히 높아진 출산율의 결과, 청소년으로 성장한 이들 전후세계가 1960년대에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연령 집단으로 등장하여 영 파워를 형성하게 되었다. 
주된 역할을 한 젊은이들은 종전의 인습을 타파하여 패션에 혁신을 일으켰고, 그 이전부터 시작된 이러한 움직임은 절정에 달하여, 패션 역사상 최초로 젊은이들이 기성인들을 리드하기 시작했다. 또한 패션은 과거의 수직적 사회 구조에 의존하기 보다는 수평적 문화 구조에 의하여 형성되었다. 팝 아트 가운데는 상징적이고 대중적인 마크나 만화풍의 그림 등을 셔츠의 앞 명이나 뒷면에 장식한 것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팝 아트가 패션에 방영된 것이 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패션은 주로 남녀 구별 없이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길렀으며, 좀 더 활동적이고 단순한 스타일로 실용성을 기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젊은 층의 생활감각에 잘 맞아 거의 완벽하게 영 룩을 주도 했다. 주요 영향으로는 팝 뮤직과 팝 문화를 들 수 있는데 패션은 더 이상 쿠튀르에서 스트리트로 나오지 않고, 점차적으로 스트리트에서 쿠튀르 하우스로 가게 되었다. 
 팝 아트 화가들은 과학기술시대의 대량생산, 대중문화, 소비문화, 도시문화 등에 관심을 갖고 대중적인 매체를 소재로 하였는데, 대량생산의 이미지로 유명 상표 유명인의 얼굴 지폐나 신문 등을 모두 실크 스크린 기법을 사용하여 화면에 구성하였다. 팝 아트 중에서 상징적이고 대중적인 마크나 만화풍의 그림 등을 셔츠의 앞면이나 뒷면에 장식한 것이 있는데, 팝 아트가 패션에 반영된 것이다. 또 1960년대의 팝 패션에서 미니스커트, 힙스터 팬츠, 시스주 블라우스 등 팝아트의 에로티시즘을 표현한 것들이다. 
 팝뮤직과 히피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의 등장은 현대 패션 산업의 발전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되었다. 팝 뮤직은 팝과 젊은이 문화를 대표하기위해 필연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엘비스, 비틀즈, 롤링스톤즈등 대중 가수의 영향을 받아 이들의 차림새를 패션의 영감으로 수용하였다. 또한 젊은 층의 패션에 충격을 준 히피 패션은 진 패션으로 발전하였고 60년 후반에 들어서는 유니섹스 룩으로 발전되었다.
 
 종래의 상류층만을 위한 고가 고질의 패션 디자인이 1960년대 이후 대량 생산과 합성 섬유의 발달로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구입하여 소모할 수 있게 되어 대중 패션, 팝 패션 탄생 한 것이다. 팝 아트는 예술성 자체의 의미보다는 광고, 상업 디자인, 사진술, 영화등과 같은 대중 예술 매체의 유행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로서의 의미가 강한 것으로 1960년대 패션에 있어서의 혁명적인 변화의 주된 영감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팝 아트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상대적인 기준에서 인간을 평가하기 보다는 각자의 신념을 존중하는 경향으로서 패션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패션에 있어서 보편타당성을 거부하고 즉흥적이고 전위적인 패션 감각을 표현하려 하였다. 미니스커트가 주는 감각이 우주 개척 시대의 미래 지향적인 스타일에 적합하였고, 젊은이들의 취향에 잘 어울렸으며 미니 스타일이 종래의 여성에 대한 기성관념을 타파하고 도덕감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이러한 점이 젊은이들에게 심리적으로 어필되어 ‘자유의 젊음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더불어 핫팬츠의 유행이 널리 퍼지고 일반 대중도 밍크코트를 착용하게 되었다.
 팝 아트가 대량 생산과 대량 전달에 의해 형성된 도시 생활을 소재로 택하는 것과 같이 1960년대 이후는 패션에 있어서도 새로운 소재에 대한 추구가 시도되었다. 새로운 옷감 소재로서 반 투명직, 비닐이나 가죽 등이 많이 사용되었고 플라스틱, 금속, 유리등의 소재도 특이한 방식으로 응용되었다.
팝 아트가 패션에 미친 또 하나의 두드러진 영향은 선명한 색으로 대조된 배색과 단순 기하학적 모티브를 배열하고 회화적인 효과를 표출하는 것이다.
1960년대의 젊은 여성들은 충격적인 미와 새로운 경험을 하기위해 거대한 플라스틱 이어링, 가짜속눈썹과 가발 등을 애용하며 저속한 디자인을 애호하였고, 유치하고 싸구려이며 쉽게 소모 할 수 있는 플라스틱, 비닐, 금속 등의 모조품을 패션에 사용하였다.
6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마릴린 먼로가 자주 등장한다. 그녀의 얼굴은 실재적 존재를 나타내는 하나의 시각적형식이라기 보다는 섹스의 심볼로서 복식에 반영되었다.  

3. 펑크 룩
1) 안티 패션과 펑크스타일의 등장
  1970년대 후반, 백인 청소년들의 저항적 하위문화인 펑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펑크는 흑인댄스 음악을 의미하는 펑키에서 파생된 것으로 1960년대 초에 켈리포니아 북부에서 활동을 시작한 예술가들에게 붙여진 명칭이다. 펑크는 1976년 영국의 번화가인 킹즈로드를 중심으로 생활하던 실업자, 혹은 노동자 계층의 자녀들이 중심이 되어 발생한 그룹으로, 좌절에 대한 돌파구를 찾기 위한 문화적 반향집단으로 자칭되었다. 펑크 패션은 1976년 런던 록 밴드의 무대의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영국의 특수한 경제 불황 하에서 노동계급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속박되어 있음을 느꼈다. 간축경제 속에서 미래는 불투명해 보였고, 그들의 의견은 제한되었다.
  펑크족 청소년들은 검정 가죽 재킷, 찢어진 청바지, 요란한 모양과 색깔의 머리뿐만 아니라 속박과 구속을 상징하는 체인과 안전핀을 신체에 꽂는 등 충격적이고 의도적인 추한 표현을 통해서 미래가 없음을 상징하는 펑크 스타일을 추구하였다. 펑크는 음악 용어인 펑키에서 파생된 것으로 1960년대 초에 캘리포니아 복부에서 활동을 시작한 많은 시각 예술가들에게 붙여진 명칭이다. 펑크 미술은 뉴욕과 로스엔젤레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추상 미술운동에 대한 반발로 표현된 미술운동으로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며 감각적이고 유머와 동속성이 있는 대중문화에서 출발하였다. 
 이러한 표현은 일자리나 미래에 대해 희망을 주지 못하는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심리가 내재된 것이었다. 또한 계층과 인종 차별에 대한 무언의 저항, 기성세대가 독점한 사회에서 좌절, 미래에 대한 희망의 포기는 펑크를 허무주의와 무정부주의로 이끌어갔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음악으로 펑크 록을 들었고, 펑크족이란 명칭도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펑크 록 음악가들은 난폭하고 과격한 행동과 함께 충격적인 복장을 무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보여 주었다. 이러한 과격한 펑크 스타일을 주류 유행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아방가르드 디자이너, 잔드라 로즈와 비비안 웨스트우드이다. 1976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반디즈 콜렉션에서 반 패션으로서의 파괴적이고 음란한 의상 세계를 시험하는 일면으로 핑크 록의 찢어지거나, 외설스런 T 셔츠를 발표하여 패션의 무절제와 기발함을 표현하였다. 펑크 패션은 하류층 청소년들에게 유행되었던 스타일이 성인을 위한 패션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복식이 인간의 가치관과 정신세계를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2) 펑크 룩의 특징

 펑크 패션은 1970년대 후반, 그 시대 젊은이들의 침울한 심정을 대변해 주는 록 음악 가수들의 침울한 심정을 대변해 주는 록 음악가수들의 무대의상에서 볼 수 있다. 펑크 패션의 상징으로 초기에는 머리를 분홍과 녹색으로 염색하거나 머리카락을 치켜세우는 등의 헤어스타일을 하였고, 의상에 있어서도 일부러 혐오감을 줄 수 있는 불량스럽고, 한 결 같이 헤지고 찢어진 매우 자극적인 옷차림을 하였는데 특히 T 셔츠에 꼭 끼는 청바지를 즐겨 입었다. 1990년대의 펑크 패션은 머리를 완전히 깎아버리거나 불쾌함을 주는 기분 나쁜 화장을 하며, 안전핀 면도칼 송곳으로 만든 괴이한 액세서리를 즐겨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혐오감을 유발시켰다. 그 외에도 검정색의 가죽이나 비닐 또는 고무제품으로 만든 팬츠나 점퍼를 입거나, 초미니스커트와, T 셔츠를 입고 그물로 만든 스타킹을 신은 것을 볼 수 있다. 
펑크는 흑인댄스 음악을 의미하는 펑키에서 파생된 것으로 1960년대 초에 켈리포니아 북부에서 활동을 시작한 예술가들에게 붙여진 명칭이다. 펑크는 1976년 영국의 번화가인 킹즈로드를 중심으로 생활하던 실업자, 혹은 노동자 계층의 자녀들이 중심이 되어 발생한 그룹으로, 좌절에 대한 돌파구를 찾기 위한 문화적 반향집단으로 자칭되었다. 
 펑크 패션은 1970년대 후반, 그 시대 젊은이들의 침울한 심정을 대변해 주는 록음악가수들의 무대의상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시초는 영국의 록큰롤 그룹인 섹스 피스톨즈로 그들의 삐죽삐죽한 헤어스타일과 자물쇠가 달린 옷걸이, 찢어진 가죽재킷은 당시 청소년 하위문화 스타일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들의 의상을 맡은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페그 팬츠, 스퀘어 숄더 티셔트, 다양한 어구를 박아 넣은 가죽점퍼 등의 록커 패션이나 주트 수트로 펑크적 요소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펑크의 유형으로는 정보나 기존 체재에 저항하려는 펑크족과 난폭한 행동 또는 음악을 통하여 그들의 저항을 표현하려는 정치적 펑크족, 별다른 의식 없이 음악이 음악을 통하여 그들 자신이 펑크족임을 자처하는 기교적이고 세속적인 특징을 가진 세속적 펑크족으로 나누어진다. 그들이 선택한 저속해 보이는 펑크 패션은 완벽한 겉치레를 비꼬는 속되고 이상한 싸구려 옷차림이었다. 혐오스러움을 나타내려고 하였으나 액세서리나 화장, 헤어스타일 등에서도 파괴적인 해체미를 표현하였다. 반전과 핵무기 사용불가의 의미로 군복스타일을 즐겼으며 검정색 가죽점퍼는 필수적이었고 되도록 쇠로 된 지퍼나 금속 징을 많이 사용하여 차갑고 위협적인 느낌을 주었으며, 끈을X자로 묶어 올라간 돌격대원 군화 메두사라는 플라스틱 해변용 샌들, 코끝이 네모난 독일군 장화, 안전핀, 면도칼, 체인 등의 액세서리를 사용하였다. 이들의 저항은 앞날에 대한 절망감이나 욕구 불만 등 기성사회에 반항하는 반 모드 현상으로서, 공격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만의 스타일을 표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동적인 행동을 표출하고 공공연하게 음란한 언행을 하기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패션계에 새로운 감각으로 신선함을 주었으며, 현재까지 액세서리나 헤어스타일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펑크가 하이패션에 도입되고 점차 완화됨으로써 재미있고 생동감 있으며 즐거운 감각의 디자인으로 변화되면서 일반대중의 유행에 영향을 주었다.
 70년대 패션의 불길은 히피운동에 영향을 받아 인위적인 것을 선호하는 것과 자연적인 것을 선호하는 상반된 두 가지 스타일이 유행 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첫째는 과거의 것에
새로운 현대적 감각을 가미하여 인위적인 패션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이며, 둘째는 패션 산업에 의해서 강요되어진 패션을 거부하는 것으로, 이제까지의 보수적인 패션과는 다른 전위적인 패션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이다. 후자의 전위적 패션은 개성적이며 자유로운 감성을 가지고 모험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의식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전통에 구애받지 않는 창조성, 자기만의 강력한 메시지를 나타내는 이러한 반 모드는 젊은이들에게 급속히 퍼져, 70년대 후반 펑크와 같은 스트리트 패션을 창조해 냈다.
  펑크와 히피는 둘 다 국가에 대한 어떤 피해 망상적인 편집증을 갖고 있으나, 히피들은 약이나 환상적인 음악 속에 빠져듦으로써 세상의 추함을 회피하려는 반면, 펑크들은 도시의 게릴라를 표방하면서 세상의 추함을 더욱 확대시킨다는 점에 차이점이 있다. 실업의 증가와 그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회와 마주한 10대들 사이의 거짓 없는 분노와 좌절에 대한 반동은 펑크와 같은 거리패션의 추종자들을 만들어 냈으며 혐오감을 주는 모든 행동에 대해 너무나 순순히 변명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된 젊은 층에 의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괴상한 옷차림의 핑크 족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이렇게 탄생한 핑크는 1982년 정도까지 자극성을 띄었다. 이렇게 전통에 구애받지 않는 파괴적인 디자인과 상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창조적인 핑크는 영국을 스트리트 패션의 중심지로써 큰 관심을 집중시켰다. 
  베비스 힐러는 그의 저서에서 "1960년대가 Swinging하면서 낙천적이며 혁신에 넘친 시대였다면, 70년대는 마법에서 깬 듯한 느낌, 불안과 부정적인 느낌을 지녔으며 후반에는 'purk'라고 하는 짖는 듯한 파괴적 무정부주의가 탄생하게 되었다" 고 지직하였다. 더글라스 A. 러셀은 "펑크란 사회적 개명이 의미하는 모든 종류의 극단적인 것을 기대하는 것으로, 지나친 메이크업, 의상, 머리 염색 그리고 태도를 말한다. 그 이름은 펑크 락 뮤직으로 왔으며, 스타일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펑크 락 밴드의 허무주의 적인 추종자들에게 의해서 입혀졌다"라고 언급하였다. 
  이와 같이 펑크는 기성세대에 항의하는 일정부류의 특정사상이나 저항갑을 표현하기 위해 발생했고, 그것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젊은이들 사이에 부분적인 유행을 옮겨 주었다. fuck, No feeling, No sex, Anarchy, Destroy등 즐겨 등장하는 펑크록의 가사들은 영국식 히스테리, 그리고 불언의 폭력을 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펑크의 형태와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섹스 피스톨즈의 리드싱어 조니 로튼은 나찌 모양이 장식된 티셔츠를 입고서 선동적인 분노의 혐오스런 행동을 표출했고 공공연하게 음란한 언행을 함으로써 언론의 지탄대상이 되었다. 또한 코와 입을 통해 안전핀을 꼽은 영국 여황의 사진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노래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증오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경제 불황으로 실직한 노동자계층 젊은이들의 앞날에 대한 절망감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펑크는 어떤 폭력 없이 이상한 복장, 폭발적인 음악 등으로 영국의 젊은이들   이 순수하게 그들의 절망을 표현한 것이다. 펑크는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던 과거의 미의식   에 충격을 주는 것이다. 기존에서 벗어난 새로운 감각을 던져주는 촉매제로서 일반 예술이   나 복식에 신선함을 던져 준 것이다. 즉 추한 것이나, 일상생활의 하찮은 것, 기존의 사고   방식으로는 예기치 못한 물건들에게서 새로운 미를 발견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실로 예술   에 있어 모더니즘만큼이나 패션에서 가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펑크는 그 자신들의 소속감을 위해 펑크를 상징하는 문자나 기호를 곳곳에 표시함으로써   저항을 나타내었다. 그것은 보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기 위한 펑크의 수단이었다. 펑크들은 그들의 현실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어떤 가능성도 믿지 않으며, 따라서 노 퓨처라는 단어는 그러한 그들의 절망감을 단적으로 사인하는 Purk의 상징으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미래는 없다는 펑크족의 슬로건은 그들의 노래에서, 옷에서, 또한 거리의 스프레이식 낙서에서 자주 발견되어지는데, 앞날에 대한 절망감과 함께 펑크의 근본인 허무주의를 의미한다.
  펑크족은 그들의 머리를 불규칙한 길이로 잘라 뾰족하게 한 다음, 빳빳이 고정 시켜 마치 머리에 뿔이 난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또는 머리 양쪽 측면을 극도로 짧게 자르거나 면도를 하고 앞이마부터 뒷 목덜미까지 넓은 부채모양으로 잘라 수탉의 벼슬처럼 꼿꼿이 세운 모히칸족 헤어스타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손가락을 기름에 한번 담구었다가 머리를 비비꼬아 곤두세우는 폭발하는 듯한 모양의 스파이크 헤어도 나타났다. 펑크들은 머리를 분홍색, 오렌지색, 초록색의 형광물감으로 물들이기도 했는데, 이것은 전통 오페라에서는 죽은 사람을 상징하는 과장하는 듯한 지나친 표백이지만 펑크족에게는 젊은이들의 가장 순수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혹은 가장 커다란 가능성의 상징으로 쓰였다. 이러한 헤어스타일은 펑크족의 매우 중요한 특색이며, 펑크 감각의 헤어컷과 머리의 일부분을 다른 색으로 염색하는 패션은 하이패션에 뿐만 아니라 대주들에게 널리 유행을 불러 일으켰다. 펑크족들은 눈  언저리를 멍든 모습으로 그리거나 눈 주위에 검은 웅덩이 모양으로 선을 여럿 두르고 눈 꼬리는 날카로운 방추형으로 그리는 드라큘라 형 화장을 하였다. 또한 얼굴에 검은색으로 점이나 문양을 그려 넣거나 까만 입술 색깔을 칠하는 것으로 외관상 문명 양상을 띠고 있다. 소매나 바지 부분에 구멍을 내기도 하고 너덜너덜하게 찢기도 하여 파괴적이고 무질서하며 인간의 정서가 없어 보이는 기괴한 모습도 나타내었다. 이상과 같이 핑크패션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전통이나 상식에 구애받지 않는 펑크감각은 전위 패션의 요소로서 패션에 가능성을 보려하고 있으며, 새로운 미와 매력을 창조하려는 인간의 근원적인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펑크의 헤어스타일, 메이크 업, 악세사리, 복식 등에서 나타난 결과를 종합해 보면, 펑크가 패션에 미친 영향은 크게 기존의 미의 개념에의 도전, 장식의 개성화, 그리고 감각의 전환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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