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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감상문] 모던타임즈(Modern Times), 1936, 찰리 채플린

by 서풍광시곡 2020. 3. 23.


모던타임즈(Modern Times), 1936, 찰리 채플린


①영화의 줄거리 요약

②영화를 통해 감독이 던지려는 메시지

③기계(과학)기술문명의 문제점과 그 극복방안


오늘날 현대인에게 기계와 기술을 떠나서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기계와 기술이 인간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계와 기술에 종속된 인간들이 기계의 부품처럼 되어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찰리는 쉴 틈도 없이 하루 종일 나사 조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잠시 일손을 놓을 때에도 나사못을 조이는 행동을 한동안 멈출 수가 없게 될 정도로 일을 하는데 결국 눈에 보이는 나사못과 닮은 모든 것을 조여야한다는 강박 관념에 빠지고 급기야는 정신병자로 신고 되어 정신 병원에 가게 된다.


시간이 지난 후 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방황하고 트럭에서 떨어진 깃발을 주인에게 돌려주려하다 시위 군중의 주도자로 몰리게 되어 체포되고 결국 수감된다.


그렇게 수감된 찰리는 또 우연하게 감독관들을 제압해 탈옥하려는 일당들을 물리쳐 편안한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생활도 잠시, 수감생활이 끝나고 교도소장은 취업을 용의하게 해줄 편지까지 쥐어주며 찰리를 풀어준다. 그렇게 교도소에서 풀려난 찰리는 길을 걷다 빵을 훔쳐 달아나던 소녀를 도와주기위해 또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기 위해 찰리는 소녀대신 자신이 잡히나 곧 자신이 아닌 것이 밝혀지고 결국 소녀가 다시 체포된다. 


이에 실망한 찰리는 무전취식을 하고 스스로 경찰에 체포되어 경찰서로 향하는 도중 소녀와 재회하고 함께 도망쳐 나간다. 그렇게 도망친 찰리와 소녀는 집을 얻기 위해 백화점 경비원으로 일을 하기도 하고 공장에도 취직했었으나 번번이 소동으로 막을 내린다. 결국 소녀의 도움으로 카페에 취직한 찰리는 성공적으로 가수 대뷔도 하게 되었으나 소녀를 추격하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다 결국 다시 떠돌이로 남는다. 그러나 거리에 나선 찰리와 소녀는 희망만은 버리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난 후  ‘과연 찰리 채플린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을까?’에대해 심각하게 고찰해보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영화를 통해 찰리는 수많은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당시 노동자들의 애환도 말하고 싶었을 것이며 더불어 과학, 기술이 발달됨에 따라 혹 인간이 기계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을 조정하게 될 것은 아닌지에 대한 걱정 등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희극적으로 코메디화하여 이야기하였지만 정작 당대 현실은 얼마나 암흑기였을지 불 보듯 뻔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쉴 시간도 없이 그들의 노동력을 탈취 당했을 것이며 그것도 모자라 식사시간도 아까워하는 공장장의 횡포.. “더 빨리, 더 빨리..” 공장장은 그렇게 말하며 그들의 노동력을 탈취해나갔으며 결국 자신들의 인권을 위해 시위를 하는 노동자들이지만 그마저 매번 경찰에 의해 진압되고 만다. 진압되는 과정에서 총기난사도 망설이지 않았으며 그로인해 목숨을 잃는 자들도 허다했을 것이다. 찰리 채플린은 그런 현실에 분노하며 영화를 통해 이런 현실을 고발하고 싶진 않았을까?? 또 찰리 등 여러 사람이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람이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점점 기계의 한 부품이 되어가는 것과 같아 보인다. 이는 기계(과학)기술문명에 대한 감독의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시선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결국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기계(과학)기술문명을 인간이 조정하기보다는 휘둘려지는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며 이로 인해 생기는 인간소외현상 등을 걱정한 것이다.


‘모던타임즈’의 첫 장면은 이를 더욱 강조되게 풍자적으로 알려주는데 시계바늘의 단순하고 주기적인 반복적인 움직임은 바로 산업사회에서 인간들이 기계적・순환적인 모습을 갖는다는 것을 암시하고 또 양몰이 장면과 노동자들의 출근 장면은 양을 노동자로 양치기를 국가 또는 자본가로 대치함으로써 노동자들의 획일적이고 통제된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이 인간성을 조금씩 잃어가고 결국 인간소외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았는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회사의 거대한 생산 시스템 안에서 노동자들은 분업 체제에 의해 나누어진 일부 업무만을 담당할 뿐이다. 스스로 주체로서 노동을 기획하고 타인과 토론과 협동을 하며 생산을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한 부속품처럼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인 업무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또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나타나 조직에 거대화가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거대조직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관료제가 발달하였다. 관료제는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조직을 관리한다. 관료제는 효율성, 신속성, 안정성 등의 장점이 있어 효율적인 작업과 빠른 업무처리, 지속적 업무를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창의성을 억제하거나 무사 안일주의 인간소외 현상 등의 단점을 가지고 있다. 개성, 창의성의 억제와 획일화로 인해 비합리적인 요소가 관료제에 내재되어 있음으로 탈관료제를 행해야 할 것이다.


또 인간소외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양적 발전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각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급격한 현대화로 인해 우리사회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측면은 급격히 발전했으나 그것을 성찰하고 제어할 수 있는 정신적 측면은 제대로 갖추지 못한 형평이다. 그로인해 우리는 ‘돈’만을 절대적 가치로 삼는 물질만능주의에 빠졌고, 무한 경쟁의 장이 되었으며 획일화된 성공 모델이 삶을 짓누른다. 그러므로 삶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어떠한 대안적 삶이 가능한지 고민하는 다양한 사회적 노력들이 필요하다. 대안교육운동이나 TV안보는 날 운동 등 삶의 획일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지만 다양한 노력들이 마련되고 그것이 사회에 자리 잡아야 한다. 또한 참다운 인간관계를 통해 이해 타산적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 자신은 남들과는 다르다는 생각, 삶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대안을 찾는 사람들의 태도가 필요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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