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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감상문] 서양 미술의 이해(미술명작)

by 서풍광시곡 2020. 11. 18.

1. 주제 : 고흐, 고갱, 세잔과의 만남
  이것이 내가 계획한 전시회의 주제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세 작가의 작품들을 화가별로 따로 전시한다면 관객들은 화가 각각이 갖는 화풍을 구분하여 알아봄으로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흐관 
  고흐의 [별들이 반짝이는밤]에는 왼쪽에 불타는 듯한 삼나무와 중앙의 교회탐    과 건물들 그 넘어에는 언덕이 자리잡고 있다. 푸른 하늘과 그 위에는 달과 수     많은 별들이 강한 빛을 내는 것이 보이며 중앙 부분에는 소용돌이를 치는 듯하     게 꿈틀대는 성운같은 것의 엉킴이 그림전체에 장대한 운동감을 주고 있다.       어두운 색이 주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밝으면서 환상적이고 꿈을 보듯이 아름다우며 바탕을 보면 마치 고요속에서 소리없이 춤을 추는 하늘을 위해 노래를 연주하는 것 같다. 고흐의 그림들은 이처럼 강하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이 잘 드러나 있다. 고흐의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선의 표현방식을 중점적으로 흥보한다면 큰 효과를 거둘수 있을 것이다.
 -세잔느관
  세잔느의 펼쳐진 그림과 조합적인 화법은 입체주의와 큐비즘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그 이유를 알수있게 해주는 대표적인 그림인 [생 빅토아르산]을 제시함     으로서 관객과 비평가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을 통해  서 관객들은 세잔느의 고유화법, 즉 한 사물이나 전경을 세밀히 관찰하고 자신 이 발견한 모습을 화폭에 모두 담으려했던 그의 종합주의적 특성을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고갱관 - 
  고갱의 작품이 걸리는 곳에 가장 부각시켜놓을 작품은 ‘이아 오라나 마리아’이다. 이그림은 고갱이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중에서 스스로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칭하는 작품으로서 마리아와 예수를 타히티 사람으로 표현하며 그린 것이다. 두 명의 타히티 여인 뒤에는 날개를 단 천사가 있고 왼쪽에 보이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는 그들 머리에 있는 후광으로 상황을 짐작할수 있게 해준다. 관객들은 성서의 한 대목을 시공간이 전혀 다른 세계에 이식하여 표현한 고갱의 창의력에 감탄 할 것이다. 이 작품외에도 20세기 회화가 출현하는데 근원적인 역할을 한 그의 상징성과 내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작품을 전시할 것이다. 


피카소의작품 게르니카의 폭격을 보고 친구가 제시한 질문에 답하여라

1. 왜 작가는 흰색 검정색 황토색 으로 압축한 단색화에 가까은 배색을 택하였을까?
  이 작품은 게르니카 폭격이라는 전쟁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전쟁의 무서움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는데에 그런 배색을 사용하여 처철한 비극성을 높이기 위해서 일 것이다.

2. 이작품은  사물들을 어지럽게 구성해놓고 주고 삼각형 구도를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삼각형 구도를 사용한것은 1번에서와 같이 전쟁의 상황, 즉 날카롭고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 삼각형내지 사각형등의 다각형 구도를 사용한 것이고 사물들을 어지럽게 구성 해 놓은것은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비극성을 표출하기 위해 광기, 절망, 좌절의 절규를 형상화 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또한 피카소는 큐비즘의 파괴성과 평면화법을 작품의 소재에 맞춰 적절히 도입하였는데 그 때문에 다소 어지럽게 보일수도 있을 것이다. 
 
3. 작품에 있는 소와 말등 각각의 사물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림을 보면 말에 올라탄 사람아래 여러사람들이 짓밟혀 있는 것이 보인다. 이것으로보아서 말과 소는 침략을 한 사람들, 깔린 사람은 게르니카의 시민들로 볼 수 있다. 찟겨진 살. 부러진 칼 등은 격렬한 전쟁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령처럼보이는 것은 아마 죽은 게르니카 사람들의 혼령일 것이다. 아주 슬픈 눈을 하고 여기저기 떠돌고 있다. 


다비드-피살된 마라

  사람의 죽음에 대한 주제를 표현한 작품은 많이 있다. 전쟁이나 기근, 항해 등을 주제로 한 작품 대부분에 죽음이 드러나게 마련인데. 보통 그런 작품 안에는 붉은 피가 사방에 퍼져있고 고통에 겨워 일그러진 표정으로 가득 차있다. 그러나 이 마라의 죽음은 그렇지 않다.
  욕실 안은 아무런 장식도 가구도 보이지 않고 이것이 살인현장 이라는 것은 오직 바닥에 손잡이가 달린 피묻은 칼이 놓여 있는 것으로만 짐작할 수 있다. 짧은 생에를 살고 간 청렴결백한 혁명가의 생애가 부각되어 있는 것이다. 정말 인상 깊은 것은 마라의 표정이다. 다비드의 그림의 마라에게서는 불의의 기습을 당한 젊은 혁명가의 억울함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편안하면서 조금은 고통스럽고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이런 복잡한 감정이 드러난 죽은 자의 얼굴이기에 이 그림을 처음 보면 시선이 가장먼저 마라의 얼굴에 머무는 것 같다. 잉크병이 놓인 낡은 나무상자에 ‘마라에게 다비드가 바친다’는 글이 외로운 비문처럼 적혀있다. 그의 한손에는 사망하기전 보았던 메모지가 들려있고 밑으로 축 처진 다른 손에는 깃털 펜이 쥐어져 있다. 
  이처럼 다비드는 화면을 극명하게 2단으로 나누어 당시의 상활을 재현하듯이 사건을 기록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몇 가지 고의적 장치로 마라의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드러낸다. 마라의 가슴에 난 상처까지 부분부분 드러난 피 자국이 사실적이지만 죽음의 느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우선 마라의 얼굴이 너무나 평온하고 편지와 깃털 펜을 든 손은 아직도 살아있는 생기가 느껴진다. 엷은 미소까지 짓는 얼굴에선 살해당한 인물의 처철함이나 괴로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처럼 살인현장을 소량의 피와 경건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이용하여 혁명가 마라를 미화시킨 것이다. 
  마라의 죽음은 아주 격정적인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격정이 격정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차분하고 고요한 이 그림에 약간의 긴장만을 부여하여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다비드는 정말 대단한 예술가이다.


모네의 [해돋이-인상] 이라는 작품을 두고 수집가와 화가 비평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수집가의 관점>
  이 인상이라는 그림은 개인적으로 아주 맘에 드는 작품이군요 화려하거나 사실적이지는 않지만 맘속으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아침 안개 속에 잠든 항구에 떠오르는 태양, 한 작은 배가 노를 저으면 파도가 반짝반짝 일렁이며 붉게 물들고 멈출 것 같지 않은 붓터치는 안개 속에서 요동치는 빛을 잡아내는군요. 정말 모네 당신은 이른 아침 포구에 전개된 붉은 해. 붉게 물든 잔잔한 파도, 배에서 뿜는 흰연기, 하늘과 안개의 조화된 분위기를 순간적으로 잘 포착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좋아했던 신고전주의 작품이나 낭만주의 작품과는 너무 달라 보여서 생소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제가 잘 아는 비평가들의 의견 역시 좋지 않았습니다. 어떤사람은 당신의 그림을 가지고 “아이들의 색종이 조각이 더 나을 것이다.” 라고 까지 하더군요 당신은 이 그림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높은 가격에 팔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정말 행운이 따르는 화가입니다. 현재로서는 제가 수집했던 작품보다 더 많은 가격을 드릴수는 없지만 저정도의 작품을 현 시세의 2/3가격에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중개인의 관점>
  [안녕하십니까 수집가씨 이 해돋이-인상] 이라는 그림을 시세 반가격에 사신다고요? 아직 이 그림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 수집가님께서 가지고 계신 다른 작품들은 시대에 뒤떨어지게 됩니다. 이제는 빛에 대해서 자각할때가 온거죠. 여기 게신 모네님은 그 방면에서 최고이십니다. 이 한폭의 그림에서 안개 속에 숨어있는 빛을 찾으려하는 각고의 노력이 보입니다. 이제 이런 화풍은 대세가 될 것이고 그림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을 것입니다. 제가 장담하지요, 또한 수집가께서 마음에 드는데 가격을 낮게 부르는 것도 중계자인 저로서는 쉽게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림은 남에게 보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족합니다. 이 그림을 사신다면 당신은 거실에 해와 바다를 두는 행운을 갖는 것입니다.


샤갈 - 나와 마을  

  화면 오른쪽에는 초록색 얼굴을 한 나의 옆모습이 왼쪽에는 하얀 얼굴의 소의 옆모습이 크게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소와 나는 커다랗고 영롱한 눈을 빝내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들은 화면을 두 개의 대각선으로 분할시킨다. 둘다 목에 십자가를 걸고 있는 인간과 동물의 기이한 공존은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조로 더욱 두드러진다. 그림에 등장하는 남녀 한 쌍은 다정한 농부 부부로 보이며 고향마을의 교회와 집을 그린 그림 위쪽에는 몇몇 집들이 거꾸로 공중에 떠 있다. 이 그림에는 이와같이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가득 차 있는데 그림 아래쪽에 있는 생명의 나무와 달을 가리고 있는 태양 역시 부조화를 이루는 초자연적인 요소들로서 이 작품의 상징주의적인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색은 빨간색 파랑색 초록색등이 사용되어 다채롭고 화려한 느낌을 주고, 하얀색 컴은색이 그색과 파스텔톤으로 자연스럽게 섞여서 조용한 꿈같은 느낌도 준다. 선은 주로 곡선이 사용되어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 특이한 점은 선과선이 이어지면서 사물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샤갈의 입주름, 배경, 암소의 입부분이 하나의 원으로 구성되어있고 이와 비슷하게 뒷동산 암소의 머리부분의 선이 이어져있는데 이는 마치 피카소의 작품처럼 배경과 사물이 이어진 평면적인 느낌이었다. 샤갈의 미음속 깊이 새겨져있는 추상의 이미지를 원과 삼각형, 사각형의 기하학적 구성을 통해  평면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이 ‘나와 마을’ 인 것으로 보아 샤갈은 이 그림에 고향마을에 대한 샤갈의 여러 가지 소중한 추억들을 심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기억속의 모든 것이 만화경으로 본것 마냥 무질서하게 배열되어있는것은 고향의 마을을 그리워하고있는 샤갈의 마음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마을(소)의 거리를 같은 원 속에 접근시켜서 일체화 시키고 다채로운 색을 사용하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비틀거리고 있는 추상의 이미지를 표현해내기 위한 최상의 방법일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들, 좋은 기억 같은 자신의 경험을 미래의 풍경처럼 환상적으로 그리는 것이 샤갈 그림의 특직이다. 대각선 원 삼각형으로 나워진 추상적인 색채와 사실적인 모습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보는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하는 것 이것 역시 샤갈이 우리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중 하나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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